
반면에 YMCA는 해방을 맞아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하여 캠프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했다. 당시 YMCA 연합회 총무였던 변성옥 목사는 1년간 구미 각국의 YMCA를 시찰하였을 때, 미국 YMCA로부터 캠프장 설치에 대한 원조를 약속받았고, 이보다 앞서 1948년 봄에 도봉산 기슭에 있는 개인 소유의 별장과 임야 17만평을 캠프장 후보지로 선정하여 1만 3천 달러의 매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1954년 신흥우 박사가 UNKRA로부터 1만 5천 달러의 원조를 받아 이곳에 10여 채의 막사와 강당을 신축함으로써 캠프장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다락원이다. 이보다 앞서 YMCA는 나중에 하이-YMCA란 정식 명칭으로 명명된 중학-YMCA 활동이 활발히 전개..
대출생활
2020. 4. 5. 08:12